채현천연염색연구소

□ 한국의 의생활

흰옷을 숭상하여 백의민족이라고 불리웠던 한국인에 있어서 의관은 권위와 체면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의관(冠)을 제대로 갖추어 입어야 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관을 벗는 일이 없었습니다.

남자옷의 기본형은 바지, 저고리에 포(袍)를 입고 관모를 쓴 형태입니다. 포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나타나 있으며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백저포(袍)란 이름으로 착용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심의(衣), 창의), 중치막(中) 등 다양하게 발달하였는데 그 중에서 도포(袍)가 많이 착용되었습니다. 도포는 소매가 넓고 4폭이며 뒤에는 전(展 뒷트임이 달려있습니다.

남자 관모의 하나인 갓은 초기에는 상류층에서만 착용하였으나 중기에 천민을 제외한 일반인 모두가 썼습니다. 초기의 갓모양은 갓모자가 둥글고 양태가 넓었는데 차츰 갓모자가 각이 지고 높아졌으며 조선시대 내내 변화를 거듭하다가 대원군 집정 때 복식 간소화로 갓의 양태가 좁아지게 되었습니다. 이 외에 정자관 갓모, 유건 같은 쓰기도 있었으며 동곳, 풍잠 등 머리에 장식을 겸한 기구 등이 있었습니다.

우리민족 고유의 복식은 저고리와 바지를 기본으로 하는 북방 호족(계통이었습니다.

여자 옷은 치마, 저고리이지만 고려시대 이전에는 바지도 입었습니다. 치마, 저고리의 모습은 신분에 따라서 색과 재료가 달랐고 또 시대에 따라서 옷 길이 등이 변천하였습니다.

속옷을 여러 겹 껴입는 습속이 있었으며 다리속곳, 속속곳, 속바지(고쟁이), 단속곳, 너른바지, 치마순으로 착용하였습니다. 내가 심했던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여인들의 수발(首)에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은 땋은머리, 출가한 부녀자는 쪽진머리에 비녀를 꽂았습니다. 그러나 상류층의 여인들은 어여머리, 떠구지머리 등 가체를 얹었는데 이의 사치가 심하여 영·정조 때 개혁을 단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수발도구에는 얼레빗, 참빗, 빗치개 같은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신발은 계급에 따라 재료가 달랐는데 양반들은 가죽신을 서민들은 짚으로 엮은 4날로 짠 짚신을 신었으며 외출 할 때는 삼이나 왕골 등으로

엮은 6날의 미투리를 신기도 하였습니다. 비가 올 때 남녀 모두 나막신을 신었습니다.